** 아래 내용은 [2019 올해의 스승상] 수상자 7명의 명단과 프로필입니다. **
- 김영미 (경기 은행고)
- 박연옥 (경남 이반성초병설유치원)
- 안달 (경기 효덕초)
- 안순이 (경기 죽전고)
- 윤성진 (전북 호남고)
- 이인학 (서울맹학교)
- 정동기 (부산공고)
장애학생들의 직업교육과 인권향상을 위해 헌신한 선생님
김영미 金瑛美 48세 | 경기 은행고등학교
  김영미 선생님은 장애학생들을 위한 직업교육의 내실화에 앞장섰다. 정규 수업 외의 업무가 많아 모두들 기피하는 장애학생 통합형직업교육 거점 학교에 자원해 5년째 직업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거점학교 업무를 총괄해 주변 지역 13개교의 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업교육을 지원하는 것이다.
   여기에 선생님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일배움 프로그램’을 적용해 체계적인 진로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직업기초능력 인증제, 맞춤형 직업교육, 현장실습, 취업 후 추수지도의 4가지 단계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기본적인 직업능력부터 실무 역량까지 지원함으로써 장애학생들의 성공적인 취업 및 직장 적응을 도왔다. 심화과정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해서는 바리스타, ITQ 정보기술, 제과제빵 등 다양한 자격증 수업을 개설해 학생별 수준에 적합한 직업교육을 지도하고 있다. 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학생들은 각자 소질을 계발하고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김 선생님은 장애학생들의 인권 및 생활 지원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다. 다문화가정 장애학생, 지적장애 부모의 미흡한 양육, 중증 문제행동으로 어려움을 겪는 위기 가정 등을 전문기관과 연계해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썼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경기도 시흥교육지원청 장애학생 인권지원단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지역 내 장애학생에게 발생하는 학교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활동에도 기여했다.
   김 선생님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어울리는 통합교육봉사 동아리 ‘굿프렌즈’도 운영하고 있다. 장애 이해에 관한 주입식 교육보다는 체험 위주의 어울림 활동을 통한 인권교육을 실천했다. 또한 비장애학생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권보호교육 방과후 강좌는 물론이고 교직원 및 학부모 대상의 장애인 이해교육도 매년 실시했다. 이를 통해 장애인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학교 문화를 조성하도록 힘썼다.
   김 선생님은 이런 성과를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는 데 주저함이 없다. 교사들이 교육현장에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지역 특수학급 교사 협의회를 조직·운영해 특수학급 교사들의 전문성 신장에 기여했다. 또한 직접 직업교육 현장을 방문해 수업 실태를 점검하여 더 나은 양질의 직업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컨설팅했다.
   주위 동료교사들은 "김영미 선생님은 장애학생에 대한 이해와 상황 대처가 빠르다. 다루기 힘든 학생들은 먼저 나서서 돌봐주시고, 후배들에게 교육 기법도 적극적으로 알려주는 등 멘토 역할을 해주신다"고 한다.
   김 선생님은 더욱 체계화된 진로·직업 교육을 구상하고 있다. 장애학생들에 대한 교육이 직업을 갖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문화생활을 영위하고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유아 때부터 취업 이후의 삶까지 살펴주는 평생과정의 ‘원스톱 시스템(One-stop System)’과 장애인 평생교육 시설 확충이 꼭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장애학생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꿈을 밝혔다.
‘선생님 엄마’로 불리는 엄마 같은 선생님
박연옥 朴蓮玉 53세 | 경남 이반성초등학교병설유치원
  ‘선생님 엄마’. 이반성초등학교병설유치원 원아들은 박연옥 선생님을 이렇게 부른다. 원아들은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며 엄마에게 유치원 다녀온다는 인사를 하고, 유치원에 도착해서는 ‘선생님 엄마’인 박 선생님에게 아침 인사를 한다. 박 선생님은 교문에서부터 원아들을 맞아 손을 잡고 교실까지 안내한다.
   원아들은 집과 유치원 두 곳에서 그리운 엄마가 맞아주는 행복한 유치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 선생님이 ‘선생님 엄마’로 불리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결손가정 아이를 사택에 데려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기도 하고,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성장이 더디고 이상행동을 하는 아이를 위해 따뜻하게 품어주고 아침밥도 수시로 챙겨주는 등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 결과 발달상황이나 행동이 정상화되기도 했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위한 행정지원에도 신경 써 학부모가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될 수 있도록 돕고, 아이 아버지에게 행정착오로 과다 책정된 건강보험료를 줄여주는 데도 도움을 주는 등 일반 교사의 역할을 넘어서는 정성과 열정을 보여줬다.
   한번은 다문화 가정을 일군 베트남 여성의 ‘모국 방문’을 도와주기도 했다. 넉넉지 못한 형편 때문에 여행은 엄두를 못 내는 딱한 사정을 알게 되자 적십자사의 ‘모국 방문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게 도와주고 모자란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주변에 도움을 구하는 한편 자신의 사비를 보태 친정인 베트남을 방문하게끔 도와준 것이다. 이외에 주택 리모델링도 주선하는 등 여러 모로 도움을 주었다.
   또 박 선생님은 소규모 학급 프로그램과 도농 간 프로그램, 타 유치원들 간 협동 프로그램 진행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7년간 인근의 열악한 소규모 유치원들을 협동 교육과정으로 엮어내 공동 체험학습 등 성공적인 사례를 이끌어내었다. 이 협동 교육과정은 인근 초등학교들에까지 확산되었고 유·초등 연계 교육활동이 활성화되기도 했다.
   동료 교사들은 ‘엄마가 자식을 키우는 심정으로 교육하는 선생님’, ‘교육을 위해 어떤 것이든 실행하시고 적당한 수준에 맞추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수준까지 진행하시는 선생님’이라며 칭찬한다.
   남다른 봉사정신으로 평생 교직에 헌신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진 박 선생님은 100세가 넘은 아버지를 수시로 방문하는 등 효녀로서도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하다고 한다.
   박 선생님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남몰래 하는 것인데, 이렇게 알려지게 된 것이 부끄럽다”며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창의융합형 과학교육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밝히는 선생님
안달 安달 42세 | 경기 효덕초등학교
  안달 선생님은 고향인 경기도 평택에서 20년간 교직생활을 해왔다. 애정을 갖고 살아온 지역이지만 교직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아쉬움이 생겼다. 이곳이 ‘과학의 불모지’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곳은 과학 관련 문화시설은 물론이고 연구소나 대학도 전혀 없었다. 과학에 우수한 역량을 가진 학생들이 마음껏 배우며 재능을 펼칠 기회가 부족했다. 고민 끝에 안 선생님은 꿈을 갖게 되었다. ‘내 손으로 평택 출신의 훌륭한 과학자들을 키워보자’는 것이다.
   이후 안 선생님은 창의융합형 과학 인재 양성을 위해 헌신해왔다. 매년 100시간 이상 연수를 받고, 교수법 및 학습 자료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이러한 노력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해졌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15년간 ‘무료 방과후 과학교실’을 지도하며 활동 중심의 과학수업을 실천하고 있다. 방과후 과학교실과 더불어 ‘학생과학동아리’도 별도로 운영해 더욱 많은 학생들이 과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썼다.
   과학교육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다 보니 지금은 평택의 ‘과학 전도사’를 자처하게 되었다.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과학 소외지역 학생들을 위한 ‘찾아가는 평택 SCIENCE 캠프’를 기획해 지금까지 1000여 명의 학생들이 캠프를 거쳐 갔다.
   또한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과 선생님을 멘티-멘토로 연결해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과학탐구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사이버 자유탐구 과학품제’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함과 동시에 멘토 교사로도 활동했다. 이를 통해 매년 200여 명의 학생들이 탐구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며 평택 지역의 과학문화 확산과 미래인재 육성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2018 올해의 과학교사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재를 발굴하고 교육하는 활동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과학·수학 과목에 관심은 많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관련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자율형 영재교실’을 지도했다. 경기도 영재교육멘토, 교육부 영재키움멘토,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사연구회 회장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 영재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다양한 융합수업을 시도하고 있다. 융합인재교육(STEAM) 선도학교 업무를 맡아 학생들의 문제해결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수업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크리에이터 교육, 게임리터러시 교육 등 학생들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를 수업과 연계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뜨겁다. “여러 과목을 융합해 수업하니까 어렵지 않고 재밌어서 더 열심히 배우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동료교사들은 안 선생님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밝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라 평가한다. 언제나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빛난다는 것이다.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과 묵묵히 과학교육 활성화를 위해 애쓰는 동료들에게 이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희망을 드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안 선생님의 소망의 빛은 대한민국 과학교육의 미래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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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선율처럼 아름다운 학교를 선사한 선생님
안순이 安順伊 54세 | 경기 죽전고등학교
  “선생님을 만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요? 매일이 감동이라 딱 하루만 꼽을 수가 없습니다.”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지적장애로 마음의 문을 닫은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안순이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후로 하루가 다르게 밝아졌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맡겼던 학부모들은 입을 모아 감사와 감동을 이야기했다.
   안순이 선생님은 30년이 넘는 교직생활 동안 음악으로 학생들을 보듬어왔다. 악기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배움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술적 기반이 열악한 농촌 접경지역 학교에 근무하면서도 1인 1악기 실기 중심의 국악교육을 펼쳤다. 바이올린 전공자라 국악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직접 국악연수를 받아가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부모의 돌봄이 가장 많이 필요한 청소년 시기에 어려운 가정환경과 무관심으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함이었다.
   안 선생님의 목표는 본인이 해당 학교를 떠나도 꾸준히 악기 교육이 이어질 수 있는 기틀을 다지는 것이었다. 청소년 단체에 가입하고 각종 연주대회에서 수상한 성과로 차근차근 다양한 악기를 마련해 나갔다. 그 결과 ‘국악관현악반’으로 발전해 더욱 많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국악관현악반에서 지도받은 학생 중 졸업 후 국악을 전공한 학생들은 방과후 수업 강사로 초빙해 선후배 간의 악기 교육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경기관광공사를 통해 외국인들에게 한국 전통문화 체험 공연도 선보이며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선사했다.
   안 선생님은 또한 2011년부터 장애학생 바이올린합주 동아리 ‘워너비앙상블’을 지도했다. 장애학생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손가락을 마음대로 움직이기조차 어려운 장애학생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기란 쉽지 않았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교재와 일반인들이 배우는 연주법을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였다.
   장애학생 대상의 음악교과서에도 타악기만 다루고 있어서 바이올린과 같은 선율악기에 대한 교육 자료는 전무한 상태였다. 결국 안 선생님은 장애학생을 위한 바이올린 연주법 및 악보를 직접 연구·개발했다. 책 제목처럼 ‘누구나 쉽게 배우는 바이올린’ 교재였다.
   그렇게 꾸려나간 바이올린 합주 동아리는 장애학생들의 자존감 증진과 음악적 성장을 견인했다. 학생들은 처음엔 서툴렀지만 서로 화음을 맞춰가며 배려와 협동심도 터득했다. 학부모도 바이올린을 함께 배우며 아이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안 선생님의 지도가 입소문을 타면서 인근 학교에서도 여러 학생들이 찾아왔고, 특수교사 대상 바이올린 교수법 연수 등의 재능기부도 이어졌다. 바이올린 지도 프로그램의 일반화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큰 기여를 한 것이다. 워너비앙상블은 지금까지도 매주 토요일 정기 연습, 다양한 연주회를 통해 사회로부터 받은 도움을 음악으로 환원하자는 취지로 공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현재 재직 중인 죽전고등학교에서도 안 선생님의 아이디어는 빛을 발했다. 학교생활에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을 위해 교내 상시 공연장인 ‘죽전 아고라’를 마련했다. 학생들이 학교를 오가며 언제든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하고, 매년 ‘작은 음악회’도 개최해 민감한 청소년 시기의 학생들에게 정서적 풍요로움을 제공하고 있다.
   음악과목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질 수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 수업이지만,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직접 악보를 편집하고 합주를 지도함으로써 적극적인 수업 참여를 이끌었다. 안순이 선생님은 “학생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싶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봉사 도구 실은 트럭 타고 다니며 제자들을 사랑으로 지도하는 ‘천사 선생님’
윤성진 尹聖珍 57세 | 전북 호남고등학교
  윤성진 선생님은 학생들로부터 ‘천사’로 불린다. 교직 경력이 30년 정도의 교사라면 학생들이 대하기 어려워하기 마련인데 윤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 학생들을 위한 상담, 봉사활동 등을 해오면서 학생들은 윤 선생님을 ‘보고 배울 만한 선생님’, ‘우리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선생님’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선생님은 학기 초마다 수업을 들어가는 모든 학급의 학생들의 정보를 수집한다. 간단한 인적사항이나 장래희망을 적은 개인 기록카드를 직접 학생들에게서 받아 이를 바탕으로 인성지도를 하고 있다. 개인 기록카드에 적힌 학생들의 장래희망을 눈여겨보고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호남고 동문이나 지인을 연결하여 멘토가 되어줄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교장실과 교무실 칠판을 도맡아 쓰는 유려한 필체로 손수 책갈피 편지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책갈피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장점을 칭찬하며 각자 꿈을 펼칠 수 있게 격려하는 내용이다. 정성껏 만든 책갈피를 받은 학생들은 감동하여 선생님을 진심으로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윤 선생님이 누군가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격려로 학생들을 응원하는 모습을 학생들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천사 선생님’, ‘성인(聖人)’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윤 선생님이 이렇게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교사가 된 것은 고교 시절의 영향이 컸다. 진로로 고민하던 윤 선생님이 독일어 선생님께 편지를 써서 건넸고, 그 답변으로 장문의 편지를 받은 것에 큰 감동을 느낀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학생을 격려하고 감동을 주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윤 선생님은 그래서 학생들이 고민하거나 힘들어할 때 힘이 되어준 선생님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선생님은 학교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매일 일찌감치 학교에 도착하여 교문 주변 진입로에 화단을 직접 조성한다든지 낙엽을 청소하는 등 교내 환경 정화에도 힘쓰고 있다.
   학교 곳곳에 선생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자발적으로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힘쓰고 있다. 교내에 고쳐야 할 곳이 있다면 행정실과 함께 직접 수리에 나서는 활동을 워낙 많이 하다 보니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는 학생들은 윤 선생님을 행정실 직원으로 알다가 교사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선생님이 학교 출퇴근 때 몰고 다니는 차량은 트럭이다. 일반적으로 교사의 승용차가 트럭이라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윤 선생님의 활동을 안다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어디라도 달려가서 봉사에 나설 수 있도록 필요한 각종 도구와 장비들을 싣고 다니기엔 트럭이 제격인 것이다. 이렇게 트럭을 타고 정읍 곳곳, 심지어는 수도권까지 ‘원정 봉사’를 다니기도 한다. 낡고 오래돼 수리가 필요한데도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수리를 하지 못하는 소외계층 가정을 찾아다니며 손수 수리를 나선다.
   선생님이라는 본업을 살려 교육 봉사도 진행한다. 배움이 부족한 분들을 위한 야학에서 전공을 살려 한자를 가르친다. 윤 선생님 혼자 봉사를 하는 것보다도 교대나 사범대를 지망하는 학생들과 함께하여 글쓰기와 수학 등을 가르치면서 봉사와 진학지도를 병행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
   윤 선생님 스스로도 겸손하게 표현하셨지만, 화려한 연구 실적이나 수상 내역은 없다. 담당 교과목도 일본어라 크게 주목받지도 못한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한 언행과 솔선수범하는 행동, 그리고 봉사정신 등으로 지금껏 묵묵히 제자들을 사랑으로 지도해왔다. 윤 선생님이야말로 ‘올해의 스승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교편잡은 ‘불굴의 교사’. 같은 장애 겪는 제자 교육에 앞장선 선생님
이인학 李仁學 54세 | 서울맹학교
  13살 소년은 서서히 앞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18살 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세상을 살게 되었다. 시력을 잃은 청년은 시련에 굴하지 않고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시각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교사로 입문한 지 올해로 2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전맹 시각장애인 교사로 오랜 기간 시각장애인의 직업교육에 열정을 쏟아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학생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확보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선생님.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본인 스스로 각종 자격증을 취득했다.
   가르치고 졸업만 시키는 것이 교사의 목적이 될 수 없었다. 일선현장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깊은 고민을 했다. 대학원 석사, 특수교육과 박사과정 수료, 수기요법 마사지(7종) 이수,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근육학 이수, 딥티슈 마사지 이수 등 실질적으로 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직접 배우고 이수해 수업 과목으로 신설하고 직접 지도했다.
   선생님은 직업재활 관련 교육뿐만 아니라 중도 실명으로 인한 실의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학생들의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시키기 위해 사물놀이, 음악 등을 배우는 시간을 별도로 마련하게 하였다. 학생들의 입장을 깊이 공감하고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 왔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각종 국가 수준 시험문제를 대체 제작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학교 기업을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를통해 시각장애인의 임용과 채용의 기회도 확대했으며 중도 실명 시각장애인의 재활에 있어 핵심인 점자문해 능력과 정보접근기술 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또 한국점자규정 집필에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 점자의 국가인정에도 기여했고 시각장애인 교육과정의 교과서, 지도서 등의 집필진으로 참여하며 관련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발휘했다.
   선생님의 꾸준한 연구 활동의 성과는 국립장애인도서관장 시험에 합격하며 더욱 빛을 발했다. 2015년 4월부터 2년 10개월간 장애인 도서관장으로 재직하며 시각 장애인의 인문교양 및 문화예술에 대한 정보 접근성을 강화했다. 대부분 교수들이 역임해온 국립장애인도서관장에 시각장애인 평교사가 최초로 취임하게 된 것이 화제가 되었고, 주변에서는 직분에 맡는 역할을 충분히 잘 하실 것으로 인정했다.
   서울맹학교에는 선생님의 제자가 동료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제자는 “학생 시절 갖고 있던 열정적인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고 변함없는 모습이다”라고 했다. 또 다른 동료 교사는 “나의 동료이자, 학생이었고, 내가 보고 배우는 스승”이라며 “옳고 그름을 잘 따져서 일을 처리하고, 늘 새로운 것을 위해 노력하는 분으로 학생 지도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라고 평가했다.
   이인학 선생님은 시각장애인 당사자이면서 장애학생들의 아픔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직업재활 교육에 헌신해 부단한 노력으로 관련 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등 특수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한 분으로 진정한 사도의 표상이 되고 있다.
자동차 자격증도 교사 자격증도 4개씩 끊임없이 노력하는 ‘도전자 선생님’
정동기 鄭東基 55세 | 부산공업고등학교
  부산공업고등학교 부설 공동실습소. 산업용 및 지능형 로봇과 정밀측정-가공 등에 필요한 각종 첨단 장비를 갖추고 부산지역 특성화고 기계계열 학생들에게 신기술을 전수하는 곳이다. 올해 3월 이곳에 초빙교사로 부임해 3개 전문분야 과정을 맡고 있는 정동기 선생님은 새로운 도전에 의욕이 크다.
   “오랜 기간 공업계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산업역군을 배출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퇴직이 그다지 멀지 않았지만 아직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교사 공모에 참여했습니다”
   정 선생님의 삶은 실로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바닷가 시골마을 출신의 소년 정동기는 일찍이 최고의 기술인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공업고등학교를 다니며 선반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자 전문대학 기계과 장학생으로 배움을 이어갔다.
   졸업 후 기업체에서 선반기사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야간대학에 편입했다. 동명대학 기계과 조교로 자리를 옮겨 학업을 병행하면서 어렵사리 부경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이수한 그는 기술인에서 기술을 전수하는 교육자로 목표를 바꿔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해운대공고 자동차과 교사로 교단에 선 그는 관련 지식을 익혀나가는 한편 학생들에게 자동차 정비기술을 전수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꼈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방과후 활동으로 자동차 정비기능 동아리반을 운영하며 방학 기간과 야간은 물론이고 공휴일에도 학생지도를 위해 개인 생활을 반납하다시피 했다.
   부산전자공고에서 근무하던 2012년부터 4년 연속으로 부산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금, 은, 우수상 등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실적을 거두며 2015년에는 우수선수 지도교사 표창을 받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스스로 전문지식을 쌓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은 결과, 자동차분야 기술자격증 4개(선반기능사, 자동차정비기능사, 자동차산업기사, 자동차사정장)와 교사자격증 4개(실기교사, 기계금속, 자동차, 기술)를 취득했다.
   정 선생님은 제자들이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힘든 일을 극복하면서 발전하는 모습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정 선생님의 중소기업인력 양성사업, 산학 간 MOU 확대 및 현장 취업 강화 등을 통해 2012년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73.8%에 달했다. 이런 공로로 2013년 스승의 날에 교육부 장관 표창과 2015년 국무총리 표창(모범공무원상)을 받았다.
   “온순하고 자발적인 성격으로 학생들과 가까이 지내고, 기계계열공동실습소에서 부산지역 특성화고를 대상으로 최신기술 실습과 교사연수, 중학생 진로지도 등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선생님”이라는 것이 주변의 공통된 평이다.